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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 행사 지난 행사
(2019) 산문/고등부 대상 작품
  • 김유정기억하기
  • 문학촌
  • 2021-01-28
  • 조회수 145

-김예은(고등학교 홈스쿨링)

 

 

오전 아홉 시, 고급 승용차의 문이 열리며 한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값비싼 호피 무늬 재킷을 어깨에 걸치고 있었는데, 얼핏 보기에도 거만스러웠다.

“우리 엘리자베스, 잘 부탁드려요.”

그녀는 선글라스를 고쳐 쓰더니 고개를 까딱 움직였다. 기다렸다는 듯 말쑥한 양복 차림의 남자가 승용차에서 개 한 마리를 데리고 나왔다. 두 뺨이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는 포메라니안이었다. 입구에 선 박 선생이 조심스레 개를 받아들었고 그녀는 박 선생을 아래위로 훑더니 한마디 덧붙였다.

“되게 예민한 애라서 특별히 신경 써야 할 거예요.”

그녀가 떠나기 무섭게 연이어 이십여 마리의 견종이 속속 도착했다. 오늘 수업을 받게 될 해님반, 달님반, 별님반의 특별한 애견들이었다. 박 선생과 나는 정신없이 개들을 실내로 들였다.

사실 지난 한 달 동안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났던 터라 여전히 환상 속에서 헤엄치는 기분이었다. 개 유치원. 허접하게 생긴 이 간판이 인생을 바꾸어 줄 줄은 나도 몰랐고, 박 선생도 몰랐고 그 누구도 몰랐다. 물론 처음엔 원생이라곤 열 명 미만의 소규모 유치원이었다. 시설조차 변변치 않아서 좀처럼 원생도 늘지 않았다. 야심 차게 시작한 유아교육이었지만 늘 적자에 허덕였다. 어쩌다 ‘무지개 유치원’이란 간판의 글자 중 ‘지’ 자가 손상되어도 고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미 다니고 있는 원생이나 학부모들은 ‘무개 유치원’이 되어도 그러려니 하고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바람이 몹시 불던 날 밤, 이번에는 ‘무’ 자마저 떨어져 나갔다. 하룻밤 새에 ‘무지개’ 유치원에서 ‘개’ 유치원으로 둔갑한 것이었다.

“원장님, 어떡해요?”

간판이 잘못된 게 자기 잘못이라도 된 듯 울먹이는 박 선생을 뒤로 나 역시 한숨을 내쉬었다. 휑하니 드러난 추한 모습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개 유치원, 개 유치원이라니…. 솔직히 더 이상 유치원을 이끌어갈 자신이 없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날, 몇몇 되지도 않는 아이들이 다 돌아갈 때까지 나는 이런저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조그만 원장실에서 어떤 하나의 결론을 내기 위해 머리를 싸맸다. 바로 그때였다. 허겁지겁 박 선생이 뛰어들었다.

“원장님, 큰일 났어요.”

무엇이 또 큰일인가 싶어 망연자실 박 선생을 바라봤다.

“우리 유치원을 개 유치원으로 착각한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전화를 걸어오고 있어요. 아니라고 해도 막무가내예요. 값은 얼마가 돼도 좋으니 제발 자기네 개를 교육시켜 달라고 사정해요. 어쩌지요?”

순간 강한 그 무엇에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불빛이 번쩍,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어쩌긴. 차제에 개 유치원으로 바꾸는 거지.”

입소문을 타고 개를 맡기겠다는 사람들이 거짓말처럼 밀려들었다. 정해진 교육비도 없었고,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부르는 것이 값으로 매겨졌다. 이제는 간판을 새로 고칠 필요도 없었고, 정말이지 하루하루가 노다지를 캔 것마냥 즐겁고 신기했다.

오전 간식을 준 후에는 곧바로 훈련이 시작됐다. 앉아, 엎드려, 기다려, 같은 대부분 간단한 훈련을 포함해서 어린 강아지들의 소변 훈련을 병행하기도 했다. 나는 마당을 훤히 내다볼 수 있는 위치에 앉아서 서류 더미를 정리했다. 허리를 직각으로 수그린 세 명의 교사가 개들을 세 줄로 집합시키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왠지 모를 괴리감이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듯했다.

복도 끝자락에서 박 선생이 지친 표정으로 다가왔다.

“원장님, 오늘만 해도 컴플레인이 벌써 여섯 건이나 들어왔어요.”

박 선생은 조그만 메모지를 건넸다. 전화번호와 학부모 이름이 적혀 있었다.

“뭔데, 그래?”

“전부 추가 훈련에 관한 것들이에요. 한글 공부라던가, 영어라던가.”

기본적인 교육으로 만족하지 않는 주인들은 필요 이상 많은 것을 바라곤 한다. 집단이 커지는 만큼 뚜렷한 경계선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말티즈의 귀 두 쪽만 분홍색으로 물들이거나 아침마다 과분할 정도로 애완견을 치장하는 주인들이 넘쳐났다.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들은 더 아름답고 더 똑똑한 개를 원했다.

아직 한글을 깨우치지 못한 말티즈, 과외를 하는데도 영어 실력이 그대로인 슈나우저, 점잖지 못한 골든리트리버, 주인 말을 안 듣는 토이푸들. 상담은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주인들은 하나 같이 얼굴을 찌푸린 채 부족해, 부족해, 투덜거렸고 품에 안긴 멍청한 강아지들은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조금 더 빠듯하게, 조금 더 알차게. 입에 모터가 달린 듯 셀 수 없는 요청에 숨통이 조여 죽어 나가는 건 그들의 개였다. 조금 더 빠듯하게, 조금 더 알차게. 쏟아지는 질문 세례에 지친 박 선생이 물끄러미 울타리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초점 없이 께름칙한 눈은 울타리 속에서 짖고 있는 개들을 오래도록 응시했다.

“이상해. 한낱 짐승 따위에 미친 듯이 집착하는 사람들이나 정작 이곳을 운영하는 우리들이나. 원장님,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알록달록한 시간표에 빼곡하게 채워진 일정이 눈에 띄었다. 녹슨 가위를 그러잡은 채 가만히 시간표를 오렸다. 수십 번씩 머릿속을 채우는 의문에도, 어쩌면 예전 무지개 유치원보다 명문 개 유치원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 비위를 맞추며 살아가는 별난 세상이 뭐 문제가 되겠는가. 이건 분명 노다지인데!

논리에 벗어난 신념만을 나는 앵무새같이 반복했다.

“사람을 개처럼, 아니 개를 사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