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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 행사 지난 행사
(2019) 산문/중등부 대상 작품
  • 김유정기억하기
  • 문학촌
  • 2021-01-28
  • 조회수 151

 

- 송정훈(대륜중1)

 

 

여기 솥이 하나 있다. 커다랗고, 둥글고 깊게 움푹 파인 그릇.

때론 따뜻하고, 때로는 뜨겁게 끓고, 이따금씩 차갑게 식어버리는 공간 나는 솥을 가족이라 부른다.

누나가 내일 미국으로 떠난다. 미국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어 기숙사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 대학은 누나가 예전부터 가고 싶었던 미대 중 한 곳이었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누나의 합격 소식에 모두 기뻐했다.

하지만 잘될 일에 기쁜 마음과, 더 이상 누나와 같이 살 수 없다는 마음은 아주 상반된 것이었다. 생각해 보라. 14년 동안 한 가족으로 부대끼며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그 구성원이 우리의 생활 반경에서 뚝 떨어져 나간다면 어떨지. 그 느낌은 분명 내 몸 어디 한 자리가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 허전하고 서글픈 일일 것이다.

어머니가 소고기를 사오셨다. 누나가 떠나기 전, 마치 최후의 만찬이라도 준비하시려는 듯이 말이다. 막상 누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덤덤하지만 어쩌면 나보다 부모남이 더, 또 부모님보다 누나의 마음이 더 아릴지도 모른다.

나에겐 위로 누나 두 명이 있다. 사실 9살, 6살 큰 터울 덕분에 우리 삼남매가 잘 싸우는 법은 없었다. 아니, 엄밀히 말해 싸움 자체가 안 됐을 것이다. 말에서든 몸으로든 말이다.

하지만 둘째 누나는 유독 나에게 “잔소리 쟁이”였다. 숙제 뿐 만아니라 내 생활전반에 툭하면 비집고 들어와서 태클을 거는 것이다.

숙제 좀 해라, 게임 좀 그만 해라, 이건 이렇게 해라, 저건 저렇게 해라 등등 누나가 하는 잔소리는 시간대도 종류도 예측불허인 거다. 어떨 땐 그 소리가 지겨워 작은 누나가 좀 눈감고 지나가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그런 잔소리 강을 다 건너왔는데, 누나가 떠난다는 것이다. 난 사실 후련하다는 마음보다는 섭섭하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리고 내일 정말 누나가 다른 나라로 가버리면 내 마음은 왠지 솥 안의 식은 밥처럼 서늘해질 것만 같다.

돌이켜 보면 우리 가족은 완벽한 하나의 솥이었다. 뜨끈한 우리 솥 안에 밥이 잘 익어가듯 우리 가족은 묵묵히 서로를 아껴줬다. 솥 안에서 맛있게 익은 감자, 고구마를 꺼내 듯 큰 누나가 대학교로 갔다. 그러다 방학이면 다시 돌아왔고, 솥은 또 가득 찼다.

솥이 차가워지는 순간도 있었다. 그건 당연한 거다. 가족들 간에 크고 작은 불화가 없는 집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불을 지피면 금세 따뜻해지는 솥처럼 우리가족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뭉근하게 온기를 피워 올린다. 사랑이다.

여기 솥이 하나 있다. 커다랗고, 둥글고 깊게 움푹 파인 그릇 때로는 끓어 넘치고, 이따금씩 냉랭히 식어버리기를 반복하는 곳간 나는 솥을 가족이라 부른다.

그리고 내일 솥뚜껑이 열린다. 잠시 솥 안이 허전해질 테지만 머잖아 잘 여문 곡식이 되어 돌아올 것을 잘 안다.

누나의 멋진 유학 생활과 무사기원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