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김유정문학캠프 백일장 산문 장원 수상작-홍수연
2013김유정문학캠프 백일장 [산문-장원]잠에 대하여유봉여자고등학교홍수연 으레, 잠은 휴식으로 여겨진다. 고단한 몸과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선물이자,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사람들을 위한 도피처로 쓰이기도 한다. 하지만 나에게 잠은, 그저 무섭고 끔찍하기만 한 존재였다. 나는 특이기면증 환자다.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하면 그들은 하나같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게 뭐야?’ 그게 뭐냐면, 사람을 뿌리까지 뽑아서 잠에 대한 공포에 처넣는 무시무시한 병이다. 세상의 어떤 악랄한 말이나 욕도, 나는 이 몹쓸 병 앞에서는 아깝지 않았다. 기면증이란 말은 많이들 들어봤을 것이다.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들어버리는 병. 특이기면증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이 특이기면증을 정말 ‘특이’하게 만드는 것은, 누구도 언제 깨어날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며칠, 몇 달, 심지어는 몇 년. 영원히 잠 잘 수도 있다는 불안감은 환자들을 자살로 몰고 가기도 한다. 나 역시,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 내가 특이기면증 환자라는 걸 발견하게 된 것은 다섯 살 때였다. 어린이집에서 인형극장으로 소풍을 갔던 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곤히 잠든 나를 선생님이 업고 집으로 데려왔다고 한다. 그 뒤로 나는 사흘 동안 잠들어 있었지만, 깨어난 후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에 엄마는 피곤해서 그랬겠거니 생각했다고 한다. 몇 달 후에, 일주일을 내리 자고 일어났을 때 엄마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고, 나를 병원에 데려갔더니 특이기면증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자면,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겪었던, 죽을 뻔했던 이야기를 하겠다. 깨어났을 때에는 병원에서 포도당을 맞고 있었다. 시간은 그날로부터 나흘 후. 엄마의 말에 따르면 나는 택시 안에서 잠들었고, 택시기사 아저씨가 불러도 대답을 하지 않는 나를 의아하게 생각해 잠깐 뒤를 돌아본 사이에 빨간불인 신호등을 보지 못하고 계속 가다가 승용차와 충돌할 뻔 했다고 한다. 나를 너무도 걱정하고 있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며 미안한 마음만 들었고,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파도처럼 크게 덮쳐왔다. 이 심정은 아마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리라. 아, 말기 암 환자쯤 되면 이해할 수 있을까. 하여튼 나는 정말로 죽을 결심을 했었고, 소양1교까지 갔다 왔다. 하지만 거기서 자살 방지용 공중전화를 보고, 나는 자살은커녕 저 곳에조차 들어갈 용기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 때 용기 있게 자살하지 못했던 것이 지금의 나를 이렇게 용기 있게 글을 쓰도록 만들어준 장본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끔찍이도 무서웠던 잠이라는 것이, 내가 솔직한 글을 쓸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니, 재미있지 않은가? 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두려움에 떨던 어느 날, 죽기 전에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는, 이 두려움을 많은 사람들에게 솔직히 얘기하고 위로받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 전달의 매개체로 내가 삼은 것이 바로 글이었고, 나는 바로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내 울분을 세상에 토해줄 입과도 같은 소설을. 그 글은 현재도 집필 중에 있으며, 언젠가 꼭 출판할 것이다. 문학에 대한 그 단순한 동기는, 결국은 나를 위험천만한 곳이 될 수 있는 이곳까지 오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많은 좋은 분들의 말씀을 듣고 가슴 깊이 아로새길 수 있었다. 백일장 시제가 발표되었을 때에는 적잖이 놀라기도 했지만, 이것이 바로 나에게 주어진 기회라는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글을 썼다. 이 글을 쓰는 두 시간 동안, 혹시나 잠들어버리지 않을까 많은 걱정을 했고, 끝까지 무사히 글을 완성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쁘다. 나는 오늘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잠에 대한 나의 생각은 지금도 서서히 변해가고 있다. 으레, 잠은 휴식으로 여겨진다. 고단한 이에게 주는 선물, 슬픈 이들의 도피처. 하지만 지금 나에게 잠은, 그보다 훨씬 더 큰 의미가 있다. 어쩌면 잠은, 그 형사와 같이 절대로 만나서는 안 되었을 나의 동행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