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산문부 대상 작품
[산문 중등부 대상] 만무방 이주현(광명시 하안북중) 지난주에, 집 근처 대형마트에 쇼핑을 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할머니가 들려주신 이야기다. 할머니는 지난해까지 시골서 사시다가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 우리 집으로 모시게 된 터였다. 대형마트를 처음 보는 할머니는 산더미 같은 물품을 보시곤 깜짝 놀라셨는데,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당신이 평생 지켜오던 구멍가게에 더 애착이 가셨던 것은.만 가지 물건을 갖춘 그 구멍가게의 이름은 만무방이다.작은 가게였지만 없는 게 없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었다.할머니의 구멍가게는 읍내에서 한참 떨어진 달동네에 있었다. 가파른 언덕을 따라 듬성듬성 놓인 약 서른 가구쯤의 한미한 동네. 그런 동네에서도 가장 높고 올라가기 힘든 언덕에, ‘만무방’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할머니는 40년도 넘게 구멍가게를 운영해왔다. 할머니가 시집와서 지키기 시작한 그 구멍가게는 그 마을의 유일한 가게였다.구멍가게는 마을 사랑방이기도 했다. 구멍가게에는 없는 거 빼고 다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즐겨 찾는 라면과 국수 같은 먹을거리에서부터 소주와 막걸리 같은 술, 담배 같은 기호 식품, 아이들이 좋아하는 딱지와 뽑기기계도 한 대 놓여 있었다. 사람들은 오가며 평상에 앉아 술도 마시고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렇게 40년을 변함없이 말이다.“할머니, 거기 다시 가 봐요.”할머니 얘길 들으며 나는 철없이 덧붙였다. 어릴 때 할머니 댁에 가본 기억이 있지만 구멍가게 기억은 남아 있지 않았다.“늦었다. 다 없어졌어.”할머니가 아쉬운 듯 말했다.마을이 재개발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동네 언덕이 죄 사라지고 무슨 공장들이 들어서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왜 맨날 땅을 파고 갈아엎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광명시만 하더라도 곳곳에서 땅을 파고 새로 아파트를 짓고 있지 않은가.그러자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그 자리에 살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져버렸는가, 하는 점이었다. 나는 마트에서 산 아이스크림을 입에 녹여 먹으며 할머니의 작은 가게를 상상했다. 그러고 보니 어릴 때 기억이 나는 것도 같았다. 경운기 하나가 겨우 지나다닐 듯한 길, 그 중턱에 놓인 작은 가게. 그리고 그 안에는 잡다한 과자나 음료수나, 생필품들이 먼지 앉은 채 놓여 있었겠지. 그 안쪽에 사시사철 웅크리고 앉아 할머니는 계산을 했을 것이었다.또 초등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이 조그마한 사탕 몇 개를 쥐고 눈을 반짝이며 동전을 내밀었으려나. 아니면 동네 사람들이 모인 자리인 만큼, 온갖 소문과 이야기가 떠다녔을 것 같다. 내가 태어나서 자라온 이런 도시와는 전혀 다른, 조용하고 정겨운 풍경일 것 같다. 차갑고 빠른 도시가 아니라, 그냥 바람이 불듯 흘러가는 차분하고 따스한 느낌일 것 같았다.시골에 대해 특별히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정겨운 생각이 들었다. 할머니를 모시고 오던 날, 같이 가고 싶다고 해도 아빠가 학원, 공부 때문에 안 된다고 화를 냈던 게 기억났다. 그런데 할머니 이야기를 들으니 더 가고 싶어졌다. 비단 구멍가게뿐만이 아니었다.구멍가게 말고, 밭이나 징검다리, 동네 만화방이나 다방 같은 것들. 그런 단어를 들어도 대수롭지 않게 느끼려고 하지만 어릴 때부터 못 가본 공간이라는 인식에 ‘가본적 없는데도 그리운’ 느낌이 든다. 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어른들은 옛것은 모두 없애고 새것을 만들려고 하는 걸까.옛 것들은 더럽고 낡은 거고, 도시는 깨끗하고 튼튼한 거라고밖에 생각을 못하는 걸까? 사실 왜 그렇게 생각하고, 왜 그런 인식이 퍼져있는지 잘 모르겠다. 나처럼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라는 친구들이 엄청나게 많다. 오히려 지방에서 시골에서 올라온 친구들이 희귀한 등급으로 되어있는 상태다. 동경하면서 상상하면서도 가지 못한다니, 그러면서 어떻게 새로운 것만이 좋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생각된다.나는 계속해서 상상 속 할머니의 구멍가게를 그려 보았다. 회색의 배경을 웃음으로 색칠하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그 옆에 나란히 놓인 작은 구멍가게를. 지금은 이미 사라져서 그 동네는 공장과 건물이 지어지고 다른 사람들이 들어가 각자의 일터를 이루고 살겠지만, 할머니가 잊지 못하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잊지 않을 것이었다. 꼭 그 가게가 아니더라도 사라졌고 사라져가는 모든 ‘옛날’의 존재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 한 모두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강아지... 나중에 꼭 할미랑 가보자.”집에 도착한 할머니가 나를 달래듯이 말씀하셨다.“그래요. 할머니의 기억이 영원하다면 만무방도 영원한 거예요.”나는 할머니의 말씀에 맞장구를 쳤다.그런 내 말에 할머니는 조용히 미소로 응수하셨다. 만 가지 물건을 팔았던 그 가게는 누군가에겐 만 가지 추억이 돼 가슴 속에 살아 있을 것이다. 비록 현실에선 사라져 버렸지만 말이다. [산문 고등부 대상] 길 강다예(중국 천진시 천진국제고) 하나의 점은 고속 120 킬로미터로 달려서 선을 만들었다. 그 선은 다른 선과 엮여 두 선을 만들었고 그 두 선은 하나의 길이 되었다. 하지만 점 안에는 또 다른 선이 있고 그 선 안의 무수한 점은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께름칙한 일임이 분명하다. 오늘 내 일상적 통행은 빨간 버스로 시작된다.매우 피곤한 아침이다. 어깨가 뻐근하지만,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아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오른쪽으로 젖힌다. 버스에서는 도무지 앞을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이곳에 머리는 있지만, 눈은 없다. 창문에 머리를 기댄 채 곯아떨어진 사람, 휴대전화로 채팅하고 있는 사람, 그리고 저 앞 그저 해맑게 떠드는 어린아이들의 나열 속에서 나의 시선은 갈 곳을 잃는다. 양옆으로 붙은 창으로부터 들어오는 눈총은 햇볕보다 따갑다.고개를 꾸벅거리며 자는 친구 옆에서 나는 어색하게 앉아있다. 이상한 일이다. 차에서는 잠이 오지 않는다. 나는 차라리 창문이 없다면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 빨간 버스의 창문은 창이 아닌 벽이다. 검게 칠해진 창 안 한 쌍의 눈은 외롭게 밖을 지켜본다. 사람들이 잠을 잘 자는 이유는 별다르지 않다. 딱히 의자가 푹신해서도 아니고 온도가 적절해서도 아니다. 덜컹거리는 버스에서도 사방이 창문으로 둘러싸인 이 불편한 공간에서 안락한 수면행위가 이뤄지는 것은 이곳에 창도 있고 문도 하나 있기 때문이다.이것은 하나의 방이다. 우리는 방 속에 갇힌 사람이다. 닫힌 방에서 눈을 감고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잠을 자는 일 뿐일 것이다.버스 아저씨가 전적으로 소유한 큰 유리창을 보려 해도 내게 주어진 것은 오직 불균형한 검은 머리뿐이다. 제각각 비뚤어진 뒤통수를 노려보며 가는 것보다 차라리 창문을 보는 것이 내 마음에 한결 낫다. 나는 창밖의 이 길을 좋아한다. 버려진 크레인과 쌓인 먼지와 반쯤 망가진 차가 돌아가는 것을 보는 것은 차라리 유쾌하다. 해가 밝아오면 이 도시는 어두워지고 해가 질 때 차라리 밝다. 낮이나 밤이나 아무 다를 것이 없다. 해질녘부터 도로에는 지시가 난무한다.[멈추시오! 이제 가시오! 기다리시오!]멈추라는 건 빨간색, 이제 가도 된다는 초록색, 기다리라는 주황빛은 낮에도 있다. 나는 알고 있다. 저 세련된 빌딩 아래 앉아있는 원색 주황은 환경미화원 아저씨, 지나가는 파랑은 고장 난 트럭, 뻘건 색은 섬뜩한 국기들이다. 이 도시는 단조로워서 알기 쉽다. 여과가 없는 것이 명쾌하다 못해 껄끄럽다. 하지만 모르는 일이다. 이 도시가 단조롭다는 나의 시선 역시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탄 이 빨간 원색의 관광버스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히 거만하지 않은가.차가 출발한 지 20분이 지났고 복작한 사거리로 들어섰다. 도로 중간 인력시장은 오늘도 역시나 북적하다. 이 사람들의 무리가 인력시장이라는 것을 나는 3년이 지나서야 알았다. 인력시장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끔 ‘힘 력’은 이제 그 고개를 떨궈 흐부진 ’칼 도’ 가 되었다. 이제 그들은 작은 열매조차 자르지 못하는 무딘 쇳덩어리가 되었다.군복을 입은 아저씨들, 시계를 보는 젊은이들, 담배를 피우는 이들 앞으로는 내가 탄 이 큰 버스가 지나가는 도로가, 그들의 뒤로는 죽어버린 하천이 있다. 교차선 사이 밀려드는 차들 속에서 간신히 세워둔 한 줄은 위태롭고 권태롭기 짝이 없다. 낡은 군복을 입은 아저씨는 우리가 탄 빨간 버스를 텅 빈 눈으로 쳐다보았다.나도 창문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서 그를 쳐다보았다. 아마도 그와 나의 눈은 어느 한 허공에서 마주쳤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를 보지만 그가 보는 것은 크고 붉은 벽일 것이다. 나는 내가 결코 그들과 만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검게 칠해진 창문을 뚫어져라 쳐다보아도 그는 결코 나를 볼 수 없다. 그가 결국 볼 것은 창문에 반사된 찌그러진 그의 얼굴 주름일 것이다. 군복을 입은 아저씨 옆 한 젊은이는 그의 친구와 함께 하천을 내려다보고 있었다.이 하천의 이름은 무엇일까 찾아봐도 별다른 이름이 없다. 포장도로 옆에 놓인 한 하천의 이름 따위는 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되지 못한다. 겨울이 되어 하천이 얼면 노인들은 작은 판자를 대어 궁둥이를 붙이고선 빙판을 쾅하고 깼다. 그 중엔 간혹 젊은이도 있었다. 그들은 자질구레한 쇳덩이와 돌덩이를 가져와서는 얼어붙은 하천에서 낚시하곤 했다. 그들의 손에 쥐어진 낚싯대에 무엇이 잡히던 그건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들은 끌어올려야만 했다. 무엇이든지, 저 밑 세상으로부터, 수면 위로.가끔 누가 무엇을 집어 올린 날이면 몇몇 양동이가 남아있기도 했다. 낚시꾼들이 앉아있으면 주변 사람들이 몰려와 구경하기도 했다. 나는 그들이 불투명한 하천 밑에 무엇이 사는지 궁금한 것이 아닐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일종의 구원과도 같은 것이었다. 종교도 그 다른 무엇도 허용되지 않은 이곳에서 얇은 낚싯대로 빙판 밑 고기를 끌어올리는 것은 일종의 생존임이 분명하다. 나는 그들이 잡은 고기를 먹는지 버리는지 박제하여 기념하는지 전혀 알 방법이 없다. 돌아오는 길, 하천에는 부러진 나뭇조각 몇 개와 얼음조각들과 허투룬 구멍들만 남았다.그 허투룬 구멍들 뒤로는 불교 사원이 한 채 놓여있다. 덩그러니 놓여있지만, 전혀 외롭지 않다. 저 잘 닦인 포장도로 위에 세워진 건물은 사원이란 말이 무색하게끔 가식적인 용모를 뽐낸다. 정갈하다 못해 아주 곧은 구 층 석탑 위 작은 부처는 세상을 내려다본다. 윤기나는 적색 기둥 밑에는 죽은 부처의 관조차 없다. 사원의 안뜰 안에는 여섯 마리 백조가 산다. 오만하다. 거짓된 정직함조차 없는 저 뻔뻔함. 욕망으로 죽은 하천 바로 뒤 연못에서 여섯 마리 백조는 석가의 유희를 담당한다. 백조가 푸드덕거리는 하얀 날갯짓에 정직함 또한 함께 파도치며 흘러갔을 것이 분명하다. 나는 오른쪽으로 스쳐 지나가는 아홉 조각의 돌탑을 보고선 생각한다. 저것의 어느 부분이 석가의 사랑일까, 인내일까, 정직일까.자, 이제 거의 학교에 다 왔다. 저 뒤에 보이는 파란색 건물이 그것이다. 학교에 가려면 비포장도로를 지나야 한다. 이 길 바로 옆 유치원 앞 아이들은 누빈 옷을 입고 수업을 듣는다. 학교에서 우리는 영국식 교복을 입고 세계화와 세계평화와 빈곤과 국제적 태도에 대해서 배운다. 오늘 학교에서 나갈 진도를 생각하면서 창밖 찌그러진 드럼통을 굴리며 노는 두 사내아이를 보았다. 그렇다. 나는 아는 것이 많지만, 그들을 위한 답이 없다.나는 아직 이 붉은 선에서 내리지 못했다. 선 안의 점이 선 밖의 점이 되기 위해서는 창문을 깨부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오늘 나는 창문 옆 붙어있는 빨간색 비상용 망치를 만지작거리다 주머니에 넣었다. [산문 일반부 대상] 옥토끼 임소중(안양시) 나는 높은 곳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건 모두 아빠의 덕분이다.“아빠, 나 달에 가고 싶어. 달에는 토끼가 살잖아. 가고 싶어. 응?”“알았어. 알았어. 우리 딸.”다른 아빠들은 진짜 달님 대신 방 천장에 야광 스티커를 붙여주었을 테지만 우리 아빠는 달랐다. 정말로 내게 달님을 만나게 해주었던 것이다. 노을이 빨갛게 무르익어 터져갈 때 즈음 아빠는 나를 데리고 중형 크레인에 올랐다. 올라갈 때 느꼈던 아찔함도 잠시, 아빠와 함께 크레인 속에 들어가 해가 지는 모습을 보았다.“조금만 기다리면 달이 곧 떠.”곧 하늘에 높게 떠오른 달과 마주했을 때 아빠 품속에서 난 분명히 보았다. 하얗고 밝은 달 속에서 열심히 움직이는 옥토끼를 말이다. 발랄한 소리와 함께 내게 문자 메시지가 왔다. 아빠가 잠시 일 중간 쉬는 시간에 보내준 하늘을 찍은 풍경사진이었다. 긴 천을 팽팽하게 둘러놓은 것처럼 하늘은 참 넓고 파랬다. 아빠는 타워크레인에 매일 오르는데도 항상 매순간이 긴장된다고 말했다. 적응 안 될 정도로 아득한 높이는 어느 정도 일까, 나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내가 어릴 때는 아빠는 중형 크레인으로 조경공사 정도를 하는 정도였지만,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초고층 주상 복합 아파트나 고층 빌딩의 건설현장 중심에는 모두 우리 아빠가 있었다.아빠는 한 뼘이 겨우 넘는 넓이로 만들어진 철제 사다리를 타고 혼자 70m를 올라야 했다. 그 사다리에는 최소한의 안전 장비조차 없었다. 크레인에 엘리베이터나 안전장치 같은 장비를 더 덧붙여 설치하려면 돈도 꽤나 많이 들었고 번거롭기 때문에 아빠는 매번 맨몸으로 그 곳에 올라갔다. 사다리를 정확하게 밟으려면 아래를 보면서 올라야 했는데, 아빠는 그 때마다 나를 생각하며 오른다고 했다. 함께 달 속 옥토끼를 보러 올라갔던 그 기억. 비록 그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높은 길이지만 그 때를 생각하면 아빠는 이 높이도 거뜬히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두려운 사다리를 다 오르면, 아빠는 한 평도 안 되는 좁은 조종석에 몸을 넣고 오랜 시간을 일을 하며 보내야 했다. 아빠에게 하늘은 나와의 추억이자 일터이자, 두려움이었다. 아빠가 어떤 빌딩 공사에 참여하게 된 날이었다. 그 날 아빠는 내게 새로운 하늘 사진을 보내려다 덜컹 아래로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다고 했다. 아빠에게 온 문자들 중에 내 문자와 엄마의 걱정 섞인 문자도 있었지만, 한 타워크레인 동료기사의 사망 소식도 들어있었다. 아빠는 타워크레인 노조의 조합원이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어도 그렇게 사고가 날 때마다 문자메시지로 소식을 받고는 했다. 난 아빠가 70m의 높이에서 작은 핸드폰 화면에 가득 찬 글자들로 인해 슬퍼하고 불안해했을 모습을 상상할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거친 바람이 불 때마다 위태롭게 흔들리는 크레인 꼭대기에서 아빠는 아주 무겁고, 아득한 중력을 느꼈을 것이 분명했다.아빠의 크레인 조종석에는 나를 포함한 가족들의 사진이 붙어있기도 했고 묵주와 작은 십자가가 걸려 있기도 했다. 그건 할머니와 엄마가 각각 아빠에게 건네준 것이었다. 나는 언젠가 사춘기를 맞아 아빠에게 화를 낸 적이 있었다. 뉴스에서 한 크레인 기사의 추락 사고를 보고 하늘은 너무 두렵고 위험하다며, 공중을 포기하고 땅에 내려가서 다른 일을 찾아보는 것이 어떠냐고 말했었다. 하지만 아빠는 휘청거리는 크레인만큼이나 저 밑의 일도 만만치 않게 위험하다고, 새벽에 크레인을 오를 때마다 푸르스름한 달 속 옥토끼와 내 사진을 번갈아보면 절대 위험한 실수는 없을 것이라 말했다.아빠는 엄마와 결혼하고서 그 전부터 준비하던 고시 시험에서 계속 낙방하고 떨어졌다. 결국 생활고에 시달리자 핏덩이인 나를 먹여 살리기 위해 기술을 배우려고 노동판에 뛰어들었고 인원이 별로 없어 앞길이 꽤나 괜찮을 것이라는 초대형 타워크레인 자격을 따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아빠는 우리 가족을 위해 계속해서 올라갈 수밖에 없는 인생을 쭉 살아왔다. 과거에 우연히 나는 뒤집어지는 타워 크레인을 본 적이 있었다. 집에 와 교복을 벗고 소파에 앉아 무심코 돌린 뉴스 화면에서 어린 아이가 꽃을 꺾듯이, 크레인의 가로축이 땅에 고꾸라지며 처참하게 일그러지는 모습을 본 것이다. 그 때 내 심장은 바닥으로 내리꽂혔다. 거긴 아빠가 일하던 일터였다. 그 크레인은 아빠가 탄 크레인이 아니었지만 내 몸은 덜덜 떨려왔었다.그리고 그 비슷한 일이 아주 가까이서 일어났다. 아빠의 손이 마구 떨렸다. 크레인 가로축에 걸린 와이어가 마구 흔들리고 있었다. 아빠가 급하게 무전기를 들자마자 비명 섞인 말들이 쏟아져 들려왔다. 무너진 옆 타워크레인의 주파수가 실수로 아빠의 무전기로 흘러든 것이었다. 일어서서 한 걸음 내딛기도, 기지개도 펼 수 없는 좁은 공간에서 철수 지시가 내려지기 전까지 아빠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핸드폰에는 계속해서 연락이 도착하는 진동이 울렸고 눈앞에서는 묵주와 십자가가 양 옆으로 흔들렸다. 아빠는 그가 속해있는 허공이 죽음과 가까이 맞닿아 있다는 것을 알기는 했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라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니 어느새 달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순간 아빠는 달에 옥토끼와 토끼들이 떡 찧는 방아가 사라져버린 것처럼 느꼈다. 달빛이 어슴푸레하게 가족사진을 비췄다. 주머니 속에 담긴 핸드폰 진동이 멈추었다. 아빠는 사진 속 희고 유난히 큰 앞니를 가진 나를 발견했다.“내 토끼……!” 아빠는 숨을 천천히 내쉬며 사다리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 발 한 발, 바람이 귓가를 간질였지만 발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위를 올려다보니 크레인은 거대한 팔을 벌리고 하늘을 찌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아빠는 땅 위에서 발을 굴렸다. 땅에 무사히 다다를 때마다 하는 아빠만의 의식이고 기도였다. 아빠의 발에 다시 묵직한 무게가 달라붙었다. 내일은 누구에게도 문자 메시지가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아빠는 귀가 했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아빠는 오히려 울고 있는 우리를 위로했다. 나는 아빠가 어떤 마음으로 달까지 올라가는지를 알고 있다. 또한 오늘은 무사히 집에 돌아갔지만 또 누군가의 타워 크레인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도 안다. 단단하게 고정된 땅 위를 걸어가면서도 나는 하늘을 틈틈이 바라보며 생각한다. 저 위에 올라있는 많은 토끼들이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고 있으니 항상 응원하며 기억하고 걱정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